렌초 데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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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초 데베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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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조 데 베키 (Renzo De Vecchi) | |
출생 | |
사망 | |
국적 | |
포지션 | |
선수경력 | |
감독경력 | |
국가대표 | 43경기 |
1. 생애[1] [편집]
1.1. 선수 생활 [편집]
1.1.1. 클럽 [편집]
데베키는 1909년 11월 14일, 만 15세의 어린 나이에 AC 밀란에서 데뷔하였다. 나이로만 따지면 그 파올로 말디니보다 어린 나이에 1군에 데뷔한 셈. 밀라니스타들은 이런 그에 큰 애정을 표했고 Figlio di Dio(신의 아들)라는 별명까지 지어주었다. 그에 걸맞게 AC 밀란의 최연소 득점 기록도 가지고 있고 하프백과 풀백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데베키는 1913년 2만4천리라에 제노아 CFC로 이적했고 1915년에 제노아 소속으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우승을 차지한 이후 바로 1차 대전이 터졌고, 이탈리아 리그는 2시즌간 전면 중단되었다. 1차 대전 시기에 데베키는 통신 회사에서 근무했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리그가 다시 시작되었다. 데베키는 제노아 소속으로 2차례 더 이탈리아의 정상에 오르고 1922년 28경기 무패 행진을 이끄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1924-25시즌에 제노아는 북부 리그 우승을 놓고 볼로냐 FC 1909를 상대로 5번의 시합을 펼쳤지만 5번째 시합에서 0대2로 패배하여 3연패 도전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는 제노아에서 총 18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데베키는 1913년 2만4천리라에 제노아 CFC로 이적했고 1915년에 제노아 소속으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우승을 차지한 이후 바로 1차 대전이 터졌고, 이탈리아 리그는 2시즌간 전면 중단되었다. 1차 대전 시기에 데베키는 통신 회사에서 근무했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리그가 다시 시작되었다. 데베키는 제노아 소속으로 2차례 더 이탈리아의 정상에 오르고 1922년 28경기 무패 행진을 이끄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1924-25시즌에 제노아는 북부 리그 우승을 놓고 볼로냐 FC 1909를 상대로 5번의 시합을 펼쳤지만 5번째 시합에서 0대2로 패배하여 3연패 도전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는 제노아에서 총 18시즌을 보냈다.
1.1.2. 국가대표팀 [편집]
1.2. 이후 [편집]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편집]
이탈리아 초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덩치에 비해 힘이 좋았고 태클과 예측 능력이 뛰어나서 하프백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수비수임에도 볼 컨트롤, 드리블링, 페널티 킥에 능했다.
덩치에 비해 힘이 좋았고 태클과 예측 능력이 뛰어나서 하프백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수비수임에도 볼 컨트롤, 드리블링, 페널티 킥에 능했다.
3. 뒷이야기 [편집]
4. 수상 [편집]
4.1. 클럽 [편집]
- 프리마 카테고리아 우승 1회: 1914–15(제노아 CFC)
- 프리마 디비시오네 우승 2회: 1922–23, 1923–24(제노아 CFC)
- 프리마 디비시오네 준우승 2회: 1927–28, 1929–30(제노아 CFC)
4.2. 감독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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